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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크, ‘돈’으로 절벽을 넘다 — 시장도 슬슬 고개를 끄덕이는 중

‘키트루다(Keytruda)’의 시계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째깍거리고 있었습니다. 제약업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연간 수백억 달러를 벌어다 주는 키트루다의 핵심 특허가 2028년부터 만료되기 시작합니다. 이건 추측이나 막연한 리스크가 아니라, 이미 날짜가 정해진 이벤트입니다. 문제는 머크가 이 ‘절벽’을 마주하느냐 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경영진이 이걸 단순한 마감 기한으로 볼지, 아니면 사형 선고로 받아들일지가 관건이었죠. 최근 발표된 67억 달러 규모의 턴스(Terns) 인수는 머크가 전자를 선택했음을 보여줍니다. 주가가 105.3달러라는 3개월 저점을 찍고 회복 중인 지금, 시장의 시선도 이 지점에 꽂혀 있습니다.

2026년 3월 26일, 머크(MRK)의 종가는 118.9달러였습니다. 바닥에서 11%나 올라왔지만, 여전히 52주 신고가인 125.1달러보다는 조금 낮습니다. 지금 주가는 광기에 휩싸인 게 아닙니다. 그저 ‘돈을 낭비하지 않고 제대로 쓰는 법을 깨달은 기업’의 가치를 조용히 반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이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아는 투자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재무제표부터 뜯어보죠. 보통 머크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묻혀 숫자를 놓치곤 하니까요. SEC 공시에 따르면 매출은 2024년 642억 달러에서 2025년 650억 달러로 늘었습니다. 성장률 1.3%, 숫자만 보면 심드렁합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순이익은 171억 달러에서 183억 달러로 6.6%나 뛰었습니다. 매출이 제자리걸음인데 이 정도로 이익률이 좋아졌다는 건, 불필요한 지출을 쳐냈거나 비용 협상을 기가 막히게 했다는 뜻입니다. 혹은 둘 다거나요. 매출 대비 R&D 비중은 2024년 28.0%에서 2025년 24.3%로 낮아졌습니다. 이걸 보고 머크가 혁신을 게을리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머크는 지금 ‘대박 아니면 쪽박’인 초기 단계 연구에 직접 돈을 쏟아붓는 대신,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후기 단계 자산을 사오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습니다. 턴스 인수가 딱 그런 케이스죠. 67억 달러는 단순한 가설에 지불하는 돈이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임상 데이터를 사는 비용입니다.

반면, 매출 대비 설비투자(Capex) 비중은 2025년 5.3%에서 6.3%로 올랐습니다. 내부 개발 비용은 효율화하면서도 물리적인 인프라는 확장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초기 R&D 비중은 줄이고, 설비투자는 늘리며, 타겟팅된 외부 인수를 병행하는 것. 이건 허둥지둥하는 회사의 모습이 아닙니다. 확실한 결단을 내린 쪽의 움직임이죠.

머크의 상승 시나리오가 턴스 하나에만 목을 매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이 부분이 시장에서 과소평가된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프로메테우스 인수로 확보한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윈레베어(WINREVAIR)’는 미국 밖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캐나다 여러 주에서 급여 목록에 추가됐죠. 이런 소식이 주가를 하루아침에 폭등시키지는 않지만, 출시 초기 단계인 제품의 해외 매출 하한선을 탄탄하게 만들어줍니다. 특히 미국의 약가 개혁 리스크가 살아있는 상황에서는 이게 엄청난 강점이 됩니다. 만약 미국 내 약가 압박이 현실화된다면, 윈레베어의 해외 성장세는 훌륭한 완충제가 될 겁니다. 현재 애널리스트들의 모델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은, 이 상승 시나리오의 ‘숨은 변수’인 셈이죠.

가다실(GARDASIL)은 장기 유효성 데이터를 계속 쌓아나가고 있고, 쿼션트 테라퓨틱스(Quotient Therapeutics)와의 염증성 장질환 협업은 머크가 항암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고성장 영역으로 다각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025년 말 기준 머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46억 달러에 달합니다. 턴스 인수 대금을 지불하느라 재무적으로 무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계획을 훼손하지 않고도 가뿐하게 끊어줄 수 있는 수표인 셈입니다.

씨티그룹은 인수 발표 후 목표 주가를 125달러로 올렸습니다. 현재 주가에서 보면 소폭 상승에 불과한데, 저는 머크가 구축 중인 가치를 너무 짜게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가 보는 적정 가치는 140달러에 가깝습니다. 시장은 여전히 머크를 ‘키트루다에만 매달려 우아한 쇠퇴를 준비하는 기업’으로 보는데, 이건 2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맞지 않는 프레임입니다. 재무제표는 깨끗하고, 파이프라인 보강은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나고 있으며, 해외 다각화는 실제 매출로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물론 짚고 넘어가야 할 숫자도 있습니다. 바로 매출 성장률입니다. 650억 달러 매출에서 1.3% 성장은 확장이 아니라 현상 유지 수준입니다. 머크의 장밋빛 전망이 현실이 되려면 턴스의 항암 자산이 후기 임상을 통과해야 하고, 윈레베어의 해외 시장 안착이 예상보다 빨라야 하며, 가다실이 중국 시장의 역풍을 뚫고 물량을 유지해줘야 합니다. 가장 불안한 지점은 턴스의 후기 임상 일정입니다. 임상 개발이란 게 원래 자신만만하다가도 뒤통수를 치기 일쑤거든요. 이 중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주가는 이런 잠재적 대박 가능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장은 지금 105.3달러에서 시작된 반등이 125달러라는 벽을 뚫을 수 있을지 간을 보고 있습니다. 이 반등은 실질적인 재무 성과와 짜임새 있는 M&A 전략에 기반한 ‘진짜’입니다. 52주 신고가 부근의 저항선은 기술적인 걸림돌일 뿐, 펀더멘털의 한계치가 아닙니다. 윈레베어의 실적이 터져주거나, 턴스의 임상이 성공하거나, 약가 개혁 리스크가 생각보다 완만하다는 것 중 하나만 충족돼도 118.9달러에서 125달러 사이의 간극은 금방 메워질 겁니다. 향후 6개월에서 1년 안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죠.

이건 마치 지난번에 살펴봤던 알파벳(Alphabet)의 AI 모멘텀 저평가 사례와 비슷합니다. 지배적인 리스크 하나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그 이면에서 착실히 쌓아 올리고 있는 진짜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 말입니다.

거대 제약사가 너무 성공한 탓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고 67억 달러를 쏟아붓는 것, 그건 위기 징후가 아닙니다. 진짜 비즈니스가 굴러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죠.

Tags: 머크, MRK, 키트루다, 항암제, 턴스 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