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알파벳(Alphabet)을 둘러싼 분위기, 어딘가 익숙합니다. 차가운 분석보다는 뜨거운 감정이 앞선달까요.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고 데이터는 그저 구색 맞추기용 소품이 된, 이미 다 쓰여진 소설을 읽는 기분입니다. 소셜 미디어 중독 소송에서 배심원단이 300만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판결하자, 3월 27일 주가는 277달러로 주저앉았습니다. 지난 1월 고점(349달러) 대비 18%나 빠지는 동안 입 꾹 닫고 있던 애널리스트들은 이제야 신이 나서 내러티브를 갖다 붙입니다. ‘섹션 230(플랫폼 면책 조항)의 시대는 끝났다’, ‘플랫폼 책임론은 제2의 석면 사태다’, ‘알파벳은 이제 필립 모리스(담배 회사) 꼴이 날 거다’라면서요.
현재 이 내러티브가 시장 분위기를 거의 다 해 먹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문제는 이 시나리오가 과연 합리적이냐는 거죠.
우선 숫자부터 봅시다. 300만 달러입니다. 2025 회계연도 기준 순이익이 1,320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에게 이 정도 금액은 회계 장부에서 반올림 오차조차 안 되는 수준입니다. 만약 알파벳의 법적 리스크가 이번 판결 그 자체였다면, 주가는 18%나 곤두박질치는 대신 주석 한 줄 수정하고 말았을 겁니다. 300만 달러라는 판결액과 시장의 격렬한 반응 사이의 괴리는 명확합니다. 시장은 지금 이 판결이 아니라, 그 ‘다음에 올 무언가’에 베팅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 재판이 섹션 230 붕괴의 서막이라는 분석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규제와 소송 리스크는 실재하고, 법원은 가끔 예상을 뒤엎는 속도로 움직이며, 플랫폼 책임에 관한 법리는 여전히 불투명하니까요. 하지만 시장은 예전부터 ‘법적 종말’이 올 것처럼 호들갑 떨다가 결국 아무 일 없거나 시장이 충분히 감당할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습니다. 핵심은 리스크의 유무가 아니라, 지금 주가가 그 리스크를 이미 ‘오버해서’ 반영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실적이 말해주는 진짜 이야기
알파벳이 SEC(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2025년 실적을 보면, 이 회사는 한창 몸집을 불리는 중입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5% 성장한 4,030억 달러, 영업이익도 똑같이 15% 늘어 1,29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억지로 좋게 해석할 필요도 없는, 아주 깔끔한 성적표입니다. 시장이 ‘끝장났다’며 외면하는 그 법적 역풍 속에서도 성장은 가속화됐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자본 지출(Capex)입니다. 알파벳은 2024년 530억 달러였던 Capex를 2025년 910억 달러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매출 대비 Capex 비중을 단 1년 만에 15%에서 23%로 높인 거죠. 이 막대한 돈은 주로 ‘터보퀀트(TurboQuant)’ 프로젝트로 흘러갔습니다. 커스텀 TPU 실리콘을 통해 AI 추론 과정을 수직 계열화하려는 알파벳의 야심작이죠. 외부 칩을 사오는 대신 자체 추론 아키텍처를 구축함으로써, AI를 대규모로 운영할 때 드는 가변 비용을 구조적으로 낮추겠다는 전략입니다. 이런 자체 칩의 효율성 개선은 한 분기 만에 짠 하고 나타나지 않습니다. 복리로 쌓이죠.
R&D 비용 역시 매출의 15%(약 610억 달러)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늦추지 않으면서 하드웨어 인프라까지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가 하락을 주장하는 하락론자들의 논리가 성립하려면, Capex 투자가 결실을 보기도 전에 법적 환경이 이 모든 선순환을 끊어버릴 정도로 급격히 악화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플랫폼 책임 관련 소송은 항소 단계에서 세월아 네월아 늘어지기 마련이고, 섹션 230 개정론은 지난 10년 동안 2년마다 반복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현재의 투매 현상을 뒷받침하는 근거 치고는 너무 빈약하죠. 터보퀀트의 효율성 곡선은 5년 뒤가 아니라 바로 지금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콘텐츠 관리의 차익거래’
만약 알파벳의 AI 추론 능력이 내부에서 논의되는 수준의 정확도에 도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플랫폼의 ‘주의 의무(duty of care)’ 태만을 지적하는 논리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콘텐츠 관리가 가능해진다면, 시장이 우려하는 법적 리스크의 성격이 완전히 바뀝니다. 막연한 ‘책임 리스크’가 아니라, 충분히 통제 가능한 ‘소프트웨어 비용’의 문제가 되는 거죠. 그것도 점점 줄어드는 비용 말입니다.
이번 소셜 미디어 중독 판결의 핵심은 플랫폼이 유해 콘텐츠를 방치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플랫폼이 대규모의 자동화된 관리를 완벽에 가깝게 수행하고 있음을 증명한다면 이 주장은 힘을 잃습니다. 터보퀀트의 효율성은 단순히 마진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항소 판결이 나기도 전에 소송 리스크 자체를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 잠재력이 있습니다. 시장은 기술 환경이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법적 리스크를 계산하지만, 사실 이건 속도전입니다. 섹션 230 이슈로 알파벳에 숏(매도)을 친다면, 규제가 인프라 혁신보다 더 빨리 움직여야만 승산이 있습니다. 하락론자들은 이미 자신들이 이겼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지만요.
차트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1월 초 314달러에서 시작해 중순에 332달러까지 찍더니, 2월 내내 횡보하다 하락세가 빨라졌습니다. 2월 27일 311달러, 3월 13일 306달러, 그리고 3월 27일에는 277달러까지 밀렸죠. 이번 투매는 단발성 이벤트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서서히 형성되던 비관론이 배심원 판결이라는 ‘먹잇감’을 낚아챈 것에 가깝습니다. 이런 식의 매도는 펀더멘털의 악화보다 서사(내러티브)의 힘에 휩쓸리기 때문에 대개 적정 수준보다 더 많이 빠지곤 합니다.
알파벳의 실적 전망치는 수정된 적이 없습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여전히 15%씩 성장 중입니다. 회사는 복리 수익을 안겨줄 인프라 구축에 910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배심원이 300만 달러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나스닥 전반의 기술주 조정이라는 매크로 상황 때문에 알파벳만 따로 놀 수는 없겠죠. 입법이 빨라지거나 항소심 결과가 나쁘게 나와서 이번 조정이 끝이 아닌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겁니다. 시장은 이미 ‘법적 종말’은 가격에 반영했지만, ‘기술적 차익거래’의 기회는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시장이 떠드는 ‘소설’과 실제 장부에 찍힌 ‘숫자’ 사이의 간극을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300만 달러 판결은 팩트지만, 이걸 보고 담배 회사를 떠올리는 건 개인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지금 시장은 그 비유를 믿는 대가로 꽤 비싼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진짜 웃긴 포인트는 이겁니다. 알파벳은 애들한테 영상 너무 많이 보여줬다고 두들겨 맞고 있는데, 정작 그 이면에서는 그런 애들을 막아야 할 사람들을 죄다 기계로 대체하려고 910억 달러를 쓰고 있다는 거죠. 월가는 이게 위협인지 해결책인지 아직 감도 못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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