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원유가 4월 마감가 기준 115.3달러를 기록했다. 3개월 전 56.0달러 대비 106% 폭등했다. 상승세가 워낙 매끄럽고 거침없어서, 이제 시장은 무엇이 이 흐름을 꺾을 수 있을지 묻는 것조차 멈췄다.
유가가 한 분기 만에 두 배가 됐다.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테헤란에서 날아오는 위협적인 뉴스마다 선물 곡선에 위험 프리미엄이 층층이 쌓인다. 논리는 명확하다. 포지션은 이미 과열됐다. 그런데 이 상승세를 깰 수 있는 유일한 장치는 IEA 회원국들의 전략비축유(SPR) 창고에 잠들어 있다. 아무도 쓰지 않았고, 언급도 없으며, 에너지 트레이더들의 계산기에서도 완전히 빠져 있다.
이 판을 흔들 변수들
비축유 방출 시나리오가 무력화될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외교 채널이 완전히 붕괴해 이란이 해협에 기뢰를 깔거나 봉쇄하는 경우다. 전면전 상황에선 유조선이 다닐 수 없으니 비축유 방출은 아무 의미가 없다.
둘째, 비OPEC+ 국가들이 고유가를 자국의 재정이나 정치적 이익으로 활용하겠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공조 대신 방관을 택하면 IEA의 방출 버튼은 절대 눌리지 않는다.
셋째, 화요일 외교적 마감시한이 지나도 해결책은 없지만 군사적 충돌도 없는 ‘지루한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유가는 110~120달러 사이에서 횡보할 것이다. 6개월 단위로 장부를 운영하는 트레이더에게 비축유 방출을 노린 베팅은 방향은 맞을지언정 시기적으로는 쓸모없는 전략이 된다.
달러 인덱스(DXY)는 3개월 전 98.7에서 100.1로 올랐다. 유가가 두 배 뛰면 인플레이션 기대와 경상수지 악화로 달러에 압박이 가야 정상이다. 그런데 DXY는 찔끔 움직였다. 달러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인플레 신호를 흡수하고 있거나, 아니면 시장이 이번 공급 충격을 일시적인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전자는 유가 강세론이지만, 후자는 유가에 대한 경고음이다.
아무도 꺼내 들지 않은 SPR 카드
전략비축유(SPR)는 공급 중단 사태에 대비해 정부가 쌓아둔 비상용 물량이다. 이 판에서 가장 저평가된 변수가 바로 이것이다. IEA 체제는 공급 차질 시 회원국들이 공조하여 비축유를 풀 수 있도록 규정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미국만 6,000만 배럴을 풀었다. 즉각적인 가격 반응이 뒤따랐다. 전례가 있고, 인프라가 있고, 명분도 충분하다.
하지만 시장은 이 카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1월의 56.0달러는 정상적인 수급 균형에 약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반영한 가격이었다. 4월의 115.3달러는 파국적인 공급 중단을 기정사실화한 가격이다. 배럴당 약 59달러의 차이는 순수한 위험 프리미엄이다. 이 프리미엄이 유지되려면 공급 중단이 실제로 일어나고 지속되어야 한다.
IEA 회원국들이 1억 배럴만 공조해서 풀어도 상황은 바뀐다. 지정학적 긴장 자체를 해결하진 못해도, 정부가 물리적 공급 공백을 메울 능력이 있다는 신호를 준다. 2022년 당시 이 신호 하나로 프리미엄이 꺼지며 며칠 만에 가격이 15~20% 급락했다. 이걸 현재 115.3달러에 대입하면, 다음 지정학적 뉴스가 나오기 전까지 90달러 초중반대로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
해운 업계 상황을 봐도 긴장이 감돈다. 탱커 시장의 유동성 부족은 단순히 항로 문제만이 아니다. 거래 상대방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보험료는 치솟고 책임 소재는 불분명한데, 어느 선주가 위험한 항로에 배를 띄우겠나. 현물 시장은 선물 시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빡빡하다. 이는 양날의 검이다. 지금의 위험 프리미엄은 단기적 현물 부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작은 외교적 신호만 나와도 위로 튀려던 스프링이 반대 방향(쇼트 스퀴즈)으로 터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란과 미국의 외교적 수순이 중요하다. 화요일 마감시한은 양측 모두가 최대한의 협상 카드를 쥐고 있는 시점이다. 이란은 고유가가 세계 경제에 타격을 주고 워싱턴에 정치적 압박을 가한다는 점을 안다. 워싱턴은 군사적 충돌이 이란이 가장 피하고 싶은 ‘비축유 방출’을 촉발할 것임을 안다. 비축유는 단순한 공급 조절용이 아니라, 사실상 지정학적 무기다.
미국, 일본, 한국, 독일이 동시에 움직이는 비OPEC+ 공조 방출은 배럴 수를 넘어서는 메시지다. 테헤란을 향해 ‘호르무즈 봉쇄라는 경제적 협박 카드엔 한계가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 천장이 보이는 순간 이란의 협상 셈법은 바뀐다. 비축유 방출과 외교적 돌파구는 별개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서로의 속도를 앞당기는 촉매다.
비축유 방출은 승인부터 실제 시장 유입까지 몇 주가 걸린다. 그래서 6~12개월 관점이 중요하다. 5월의 외교적 진전은 6월의 정책 대응을 부르고, 7월의 공급 숨통을 틔운다. 선물 시장은 그 모든 것을 선반영한다. 이 흐름을 믿는다면 중요한 건 지금의 유가가 아니다. 정부가 방관을 멈췄을 때 위험 프리미엄이 어디에 안착할 것인가다.
물론 변수는 있다. 2022년 이후 미국의 비축유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에너지부 내에서 ‘재충전 vs 방출’을 두고 고민이 깊어 미국이 소극적으로 나올 수 있다. 미국 참여가 제한되면 가격 하락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다른 회원국들의 비축분이 있지만 미국이 없으면 기계적인 효과는 느려진다.
100.1에 머무는 달러 인덱스(DXY)가 마지막 힌트다. 만약 외교 시장이 호르무즈 봉쇄를 영구적인 것으로 봤다면 달러는 훨씬 높았을 것이다. 안전자산 선호는 달러에 호재지만, 인플레이션 전가는 결국 달러 가치를 갉아먹는다. 거시 경제 자금은 아직 ‘공급 중단 영구화’ 시나리오에 베팅하지 않았다. 유가 115.3달러는 바닥이라기보다 천장에 가깝다. 유가는 두 배 뛰었는데 달러는 미동도 안 했다. 이 괴리가 해결되는 방향은 달러의 냉소적인 시각을 유가가 뒤따르는 형태가 될 것이다.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은 이미 다 반영됐다. 그런데 IEA의 비축유 방출은 아직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는 유가를 반토막 낼 수 있는 유일한 도구를 손에 쥐고도, 115달러를 보며 그저 ‘공급망 문제’라며 혀만 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