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이 몇 주가 아니라 몇 달 동안이나 꽉 막혀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시장은 아직 이 질문에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6년 3월 31일 기준 WTI 근월물 가격은 104.2달러로 마감했습니다. 지난 1월 57.4달러, 2월 60.6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상승세죠. 이건 단순한 가격 급등이 아닙니다. 이미 발생한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이 병목 현상이 아예 ‘구조적’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실질적인 공포가 가격을 완전히 새로 쓰고 있는 겁니다.
이란 정부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물리는 체계를 법제화하려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건 어느 장군이 던지는 협상용 블러핑이 아니라, 진짜 ‘법’을 만들겠다는 소리입니다. 여기에 쿠웨이트 유조선을 겨냥한 드론 공격으로 선박 28척이 길목에 묶여 있는 상황까지 겹쳤습니다. 유가가 90일 만에 50달러대에서 100달러 위로 치솟은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상황이 흔하디흔한 지정학적 프리미엄과 결이 다른 이유는 명확합니다. 물류 병목 현상이 이미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죠. 묶여 있는 28척의 배는 예측치가 아닙니다. 실제로 거기 서 있죠. 시장은 이미 현실화된 차질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통행료’라는 이름의 구조적 변화
보통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은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으면 빠르게 빠지기 마련입니다. 트레이더들도 이 생리를 잘 압니다. 중동 분쟁 가능성에 베팅했다가 6주 만에 유가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니까요. 기관 자금들이 2월 저점에서 유가를 추격 매수하는 데 주저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학습 효과 때문입니다.
하지만 함정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갈등이 깊어지는 방식이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입법’이라는 점입니다. 드론 공격은 하나의 ‘사건’이지만, 통행료 법안은 ‘체제’의 변화입니다. 만약 이란이 해협을 지나는 상선으로부터 돈을 뜯어낼 권리를 법으로 확정한다면, 전 세계 에너지 물류의 방정식 자체가 바뀝니다. 모든 보험사, 선사, 정유사 조달팀은 통행 리스크를 영구적으로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이번 분기만이 아니라 앞으로 맺을 모든 선물 계약에 대해서 말이죠.
시장은 아직 이 부분을 반영하기 시작한 단계일 뿐입니다. 지금 당장의 봉쇄가 문제가 아닙니다. 호르무즈가 아예 ‘유료 도로’로 제도화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진짜 트리거입니다.
지난 3개월간 WTI의 움직임이 모든 걸 말해줍니다. 최저 55.0달러에서 최고 119.5달러. 한 분기 만에 64.5달러나 벌어진 이 스프레드는, 공급로의 안전이라는 근본적인 가정이 흔들릴 때 시장이 적정 가치를 찾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치는지 보여줍니다.
천연가스라는 대안의 한계
천연가스가 구원투수가 되어줄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가스 선물 가격은 2월에 MMBtu당 7.8달러를 찍더니 다시 2.8달러로 고꾸라졌습니다. 이런 널뛰기는 가스 시장이 원유 수요를 흡수하며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패닉 바잉 이후에 지쳐서 나가떨어진 것에 가깝죠. 원유와 함께 LNG 운송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가스로 갈아타는 건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여파는 이미 국가 재정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도는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 상황에 직면하자마자 성장률 둔화와 재정 적자 확대를 예고했습니다. 인도는 변두리 수입국이 아니라 세계 최대 수입국 중 하나이고, 국내 생산으로 버틸 수 있는 여력도 거의 없습니다. 에너지 비용이 이 속도로 뛰면 산업 생산 원가와 연료 보조금 부담이 재정 전망을 순식간에 갉아먹습니다. 이건 결국 전 세계적인 수요 파괴 신호가 되어 유가에 다시 영향을 줄 겁니다. 문제는 그 시점이 언제냐, 그리고 유가가 어디까지 올라간 뒤냐는 것이죠.
EIA는 2026년 말에 유가가 58달러로 내려갈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을 예상하기 때문인데,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해협이 정상화되고, 이란의 영향력이 약해지며, 통행료 법안이 무산된다는 세 가지 가정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합니다. 특히 통행료 법안은 외교적으로 막을 마땅한 방법도 없고 이란 내부적으로도 추진할 동기가 확실해 보입니다. 이 중 하나만 삐끗해도 공급 차질 시나리오는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겁니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변수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략비축유(SPR) 대응입니다. 실물 부족이 서구 정유 시설을 덮치기 전에 패닉 프리미엄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비축유 방출뿐입니다. 하지만 규모와 공조가 핵심입니다. 어설픈 방출은 시장이 코웃음 치며 무시할 테니까요. 여러 회원국이 동시에 대규모로 방출하는 것만이 외교적 해결을 기다리지 않고 현재의 가격 구조를 깨뜨릴 유일한 방법입니다.
방출 시점도, 공조 여부도 불투명합니다. 시장이 이 부분에 확신을 갖기 전까지는 공급 쪽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숫자는 104.2달러가 아닙니다. 해협 근처에 멍하니 서 있는 28척의 배입니다. 이 배들이 다시 움직이면 패닉은 금방 사그라들겠지만, 배 숫자가 늘어나거나 사고가 한 번 더 터진다면 유가는 119.5달러라는 저항선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갈 겁니다.
입법이라는 변수는 많은 에너지 트레이더들이 아직 제대로 계산에 넣지 못한 ‘슬로우 번(slow-burn)’ 트리거입니다. 군사적 충돌은 가격에 빨리 반영되고 빨리 잊히지만, 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란의 통행료 시스템이 입법 과정을 마치고 실제 집행되기 시작하면 호르무즈의 경제 지형은 향후 몇 년간 재편될 겁니다. 선물 시장은 아직 이 가능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은 이걸 아주 희박한 ‘꼬리 위험(tail risk)’으로 보지만, 사실은 6개월에서 12개월 안에 닥칠 ‘기본 시나리오’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판결이 아닌 사견을 보태자면, 현재 유가가 터무니없어 보이진 않습니다. 다만 군사적 시나리오에 비해 입법 시나리오는 여전히 저평가된 느낌이 있네요.
세계 경제는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원유의 20%가 폭 34km밖에 안 되는 좁은 길목에 운명을 걸고 있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 약점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법으로, 그 길목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더 열심히 깔아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