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크루즈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재무제표나 예약 곡선이 변한 건 아니다. 시장의 체감 온도가 바뀌었다. 최근 여행 관련주로 유입되는 자금에는 특유의 질감이 느껴진다. 확신이 아닌 안도감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안도. 지금 시장은 딱 그 정도만 베팅하고 있다.
CCL 주가는 28.0달러다. 3월 32.7달러에서 무너진 이후 겨우 회복한 수준이다. 3월의 폭락은 뼈아팠다. 주가는 완만하게 밀리지 않았다. 한 달 만에 19%가 증발했다. 이후 휴전설과 유가 하락이라는 호재를 타고 반등했다. 멀리서 보면 질서 정연한 회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전고점을 회복하지 못했고, 다시 치고 올라갈 뚜렷한 명분도 없다.
28달러에서 역산해보기
28.0달러가 바닥이 되려면 수학적 조건이 여럿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유가가 2025년 초 마진을 갉아먹던 수준 아래로 머물러야 한다. 고금리에 짓눌린 소비자의 지갑도 열려 있어야 한다. 수천 달러짜리 여행 상품을 선뜻 결제할 여력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카니발이 팬데믹 기간 쌓아 올린 빚이 줄거나, 최소한 영업현금흐름보다 느리게 늘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28달러는 바닥이 아닌 정거장에 불과하다.
낙관론자들이 가장 기대는 숫자는 WTI 97.6달러다. 휴전 기대로 원유 가격이 진정되자 크루즈 업체들의 마진에 숨통이 트였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하지만 97.6달러는 여전히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카니발의 연료비는 이론적인 저유가 시절과 비교하는 게 아니다. 빚을 내고 배를 주문할 때 경영진이 세운 계획과 비교해야 한다.
97.6달러.
이 숫자를 곱씹어보자. 지금 시장은 이 가격을 ‘안정세’라고 부른다. 카니발이 함대 확장을 계획할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경영 계획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 틈새에서 빚 이자는 알량한 영업현금흐름을 모조리 갉아먹고 있다.
시장이 버리지 못하는 나쁜 습관
카니발에 대한 시장의 지배적인 믿음은 2022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크루즈 수요는 구조적으로 탄탄해서, 이 엄청난 빚은 영구적인 제약이 아니라 일시적인 불편함일 뿐이라는 믿음이다. 이 논리는 록다운 이후 가격이 치솟고 운영이 엉망인데도 예약이 폭주하면서 만들어졌다. 고객이 그때 그 가격을 냈으니, 앞으로도 무슨 가격이든 낼 거라는 논리다.
지속성.
카니발의 낙관론을 지탱하는 핵심 단어다. 하지만 그 믿음의 근거였던 ‘억눌린 수요(pent-up demand)’는 이제 사라졌다. 억눌린 수요는 유한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평범한 소비자의 여행 예산이다. 호텔, 해외여행, 8일 동안 배에 갇히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다른 경험들과 경쟁해야 한다. 빚을 무시하게 해주던 그 가격 결정력은 록다운 직후의 일시적 현상이었다. 그걸 사업의 영구적 특성으로 여기는 건 분석이 아니라 습관이다.
재레버리지(re-leverage) 사이클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크루즈는 자본 집약적인 사업이다. 현대식 크루즈선 한 척에 10억 달러가 넘는다. 금리가 올라도 카니발의 함대 확장 계획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 빚을 갚는 데 들어가는 돈이 배를 최신식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본 지출과 경쟁해야 한다. 리노베이션을 안 한 배는 비싸게 팔 수 없다. 가격 결정력이 무너지면 빚을 정당화하던 수학 공식도 붕괴한다. 이건 분기별 변수가 아니라 구조적인 굴레다.
RCL과 NCLH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다. 모두 같은 금리 환경에서 몸집을 불렸고, 비슷한 레버리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높은 객실 점유율과 승객당 수익을 유지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28.0달러의 주가는 52주 고점인 34.0달러를 크게 밑돈다. RCL은 그나마 안정적인 위치를 지켰다. 시장은 카니발의 절대적인 부채 규모가 더 크다는 점을 들어, 경영의 문제보다 현금흐름 압박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52주 최저가인 17.1달러는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작년 일이다. 주가는 최저점 대비 10달러 정도 회복했다. 차트만 봐서는 이 회복이 펀더멘털 개선 때문인지, 아니면 거시경제적 호재로 인한 일시적 반등인지 알 수 없다. 17.1달러가 왜 바닥이었는지, 왜 더 떨어지지 않았는지 알아야 한다. 낙관론의 가장 약한 고리는 이 안정세가 실력으로 얻어낸 게 아니라, 유가 하락과 휴전 분위기에 빚을 져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카니발이 예상보다 빨리 빚을 갚을 가능성이다. 2026년까지 수익성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고 유가가 비용 구조를 박살 내지 않는다면, 현금흐름으로 부채의 벽을 허물 수도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크루즈를 육상 여행의 대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부채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실제로는 지나친 기우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곰(하락론자)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 시나리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28.0달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유가 변동성, 소비자의 신용 위기, 부채 압박이라는 삼중고를 감수하기엔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다. 거시적 호재로 인한 안도 랠리는 이미 가격에 반영됐다. 하지만 구조적인 부채의 벽은 그대로다. 17.1달러와 34.0달러 사이를 오가는 주가는 지난 1년 동안 시장도 카니발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고점에서 50%나 폭락했다가 지정학적 뉴스 몇 줄과 유가 변동에 반등했다고 해서 회복된 기업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건 그저 평온한 외부 환경에 모든 걸 건 레버리지 베팅일 뿐이다.
월가는 지난 3년 동안 카니발을 ‘컴백 스토리’라 불렀다. 그런데 정작 누가 그 수십 척의 배 값을 갚아줄지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속 시원히 설명한 적이 없다.